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케모너 소고~ 수인러에 대한 단상


(걍 가볍게 써서 출처는 제목만 달았음)


1. 수인러의 심적 기원
2. 수인 인간도 동물도 아닌 존재의 장점
3. 남성성과 수인
4. 수인과 환상성
5. 정리
 
 
1. 수인러의 심적 기원
 
수인러의 시작은 17천 년 전으로 올라간다.
 
……라고 말하면 조금 어리둥절할 것이다. 17천 전 존잘님이 수인을 연성 중이라니, 당시에 연성이라고 해봤자 양면석기가 아니었는가. 양면석기 온리전이 열리고 있을 시대에 수인러가 등장했다니? 그러나 실제로 수인은, 오히려 인간보다도 먼저 그려지고 있었다. 다음은 프랑스 남부의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와 그 원본을 추측한 스케치이다.
추측 복원도
 
라스코 동굴 벽화 원본



 
손과 발, 성기와 동시에 사슴뿔, 꼬리가 보인다. 뿔 부분에서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는 듯하나 이 글에서는 일단 수인으로 가정하겠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도 인간이라고 보기엔 조금 이상하다.








조금 새 인간 같지 않나……? 좌측에 새가 그려져서 잘못 유추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인간의 초상이라고 보기엔 조금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옆에 있는 소에 비해서 훨씬 정밀도가 떨어진다.
당시 그림러들의 실력이 미천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오래된 쇼베 동굴의 벽화(BC 30,000년 추정)를 보면 당시 존잘들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다.



~3만 년 전 존잘님들의 연성~
 
동굴 벽화에서 드러나는 색채 감각이나 세세함, 원근법 등을 고려해본다면 분명 실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인간을, 특히 인간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터부였을 것이다.
동물들의 그림이 많이 그려지고 있을 때, 인간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빈 얼굴의 자리에 동물의 얼굴이 채워졌다면, 최초의 수인이 그려졌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됐을까?
 
벤야민은 이 인간의 얼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제의가치는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라고 말한다. 직립보행이 인간종의 판단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굴에서 가장 인간을 찾는다. 우리는 인간의 초상을 바라보며 실재하는 인간의 존재를 어느 정도 느낀다. 초상은 부분적으로 살아 있는존재로서, ‘현실로서 다가온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타인이 기본적으로 불편한 존재라고 볼 때, 초상에 살아 있는 타인은 바라보는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살아 있는 초상화 괴담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많다. 인간의 초상은 타인이 바라보는 것 같은 그 묘한 느낌을 간직한다.
수인은 이 인간의 초상이 부여되지 않은 존재다. 수인은 인간이지만, 인간의 초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래서 네코미미는 수인이 아니다.) 인간의 초상이 박탈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수인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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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인 인간도 동물도 아닌 존재의 장점
 
수인은 인간의 초상을 지니지 않았으나, 보통 인간의 몸과 인간의 정신을 가진다. 그러나 또 하나 가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동물의 얼굴이다. 당연히 수인이니까 동물의 얼굴을 가진다. 그게 왜?
동물은 어느 정도는 타자가 아니다. 특히 위험한 동물을 마주치기 힘든 이 시대에서는 더더욱, 동물은 오로지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동물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동물은 당신을 속여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동물은 당신이 마음을 놓아도 좋은 존재다. 동물은 당신을 사랑한다. 개념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러한 점 때문에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이 그렇다. 모든 디즈니 영화에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소동물이 나온다. 아이들은 그 소동물에 자신을 이입하기도 하고, 애정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시니컬하게 보자면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위계가 있다. 어린아이의 격 이하인 것은 그 친구들이나 애완동물뿐이다. 동물은 어느 정도 안전하다. 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에게 동물 기르기를 추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마음을 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타자도 아니고 완전히 동일시되는 것도 아닌, 세미 타자 세미 주체…… 정도일 것이다. 영화에서 동물이 죽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며 포켓몬이 행위적으론 노예임에도 진실한 정서적 교류라고 믿게끔 하는 동력도 이 덕분일 것이다.
수인은 바로 이런 동물의 얼굴을 가져온다. 동시에 인간의 몸과 인간의 지능을 지닌다. 즉 이들은 동물의 얼굴, 즉 동물의 마음과 인간의 능력(혹은 인간보다 더 우월한 능력)이 있다. 수인은 동물이 할 수 없는 역할까지 가능하다. 수인은 인간을 완전히, 심지어는 더욱 낫게 대체할 수 있다.
 
3. 남성성과 수인
 
그리하여 수인이 할 수 있게 된 행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섹스-특히 게이 섹스에 초점을 맞춰본다.
수인러 중에선 14-25%가 호모섹슈얼, 37-52%가 바이섹슈얼, 28-51%가 헤테로섹슈얼, 3-8%가 다른 섹슈얼리티를 가진다고 한다. 그중 반 정도가 연애 관계에 있었고, 그중 76%는 같은 수인러와 사귀는 중이라 했다. 또 다른 설문에서는 수인러 활동에서 성적 끌림이 얼마나 중요하냐 물었는데, 37%는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38%는 양가적(ambivalent)이라고 했으며, 24%는 적거나 전혀 관계없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 중 80%는 남자다. (영문 위키 furry fandom 출처)
뭉뚱그려서 수인러의 80%는 남성애자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퍼리는 어째서 게이를 유혹하는가? 그것은 동물의 특징과 남성성의 특징이 일부 겹치기 때문이다. , 야생성, 힘 등 퍼리는 많은 남성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많은 수인이 털을 지닌다. 털은 보통 남성성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턱수염과 콧수염에 대한 성적 매력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대표적으로 링컨이 당선될 때 콧수염을 길러보라는 조언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온몸에 털이 자라난 남성이 유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상상하기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어렵다. 실제로 남성호르몬이 털을 자라게 하기도 하며, 아마도 털이 성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것이 일차적인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상징적으로도 조금 파고들어 보자.
 
크고, 털이 많고, 힘센 것은 대형 동물의 특징인 동시에, 남성성이 탈취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특히 대형 포유류는 남성성을 지닌다. 대표적으로 곰을 예로 들 수 있다.
미셸 파스투로는 곰에 얽힌 수많은 반인반수설화를 말하는데, 보통 여성을 납치하여 가둬놓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내용이 많다. 그는 덴마크 왕조의 탄생설화, 기독교의 곰 고기 금지(“그것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죄로 몰아가 죽음을 일으키는 불순한 고기이다.”), 발 데 아르당(bal des ardants) 사건, 중세 결혼식의 동물 짝짓기 등을 예로 들며 극한의 야성과 강력한 성욕의 상징이라 말한다. 그는 털복숭이인 것이 성적인 것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미셀 파스투로, , 몰락한 왕의 역사) (하지만 이 예시는 반례도 꽤 있다. 한국 설화에서도 곰이 납치해 아이를 낳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곰이 여성이고 인간이 남성이다. 그리고 웅녀도. 아르테미스 역시 곰의 여신이며 큰곰자리의 칼리스토도 어머니다. 물론, 전부 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는 하다.)

중요한 건 곰뿐만 아니라 많은 털동물이 성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리스 신화의 판이나 켄타우로스도 그 인식의 결과이다. 그들은 털이 있기에 옷을 입지 않는다. 그들은 정욕을 느끼면 행한다. 특히 가축은 옷도 입지 않고, 인간처럼 숨어서 교미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동물은 성적인 상징으로 그려지고, 이 상징성, 성적 야생성을 매개로 인간에게도 흘러들어온다.

그리하여 수인이 섹스하는 건 어딘지 자연스럽다. 특히 발정기에 관련된 설정이 그렇다. 이것은 오메가버스에 등장하는 히트 사이클의 원조격이다. 털로 뒤덮인 동물은 본능에 맡기고 성욕을 발산하는 게 허락된다. 인간에게는 배덕적인 요소다.

이 기초적인 조건이 갖춰진 뒤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남성성의 정도는 옵션을 추가할 때마다 아비꼬 카레 매운맛 고르듯 높일 수 있다. 근육이 많거나, 몸집이 크거나, 힘이 세거나, 거근을 지녔다거나, 바람둥이라거나, 섹스광이라거나. 그러나 앞서 말한 동물의 얼굴때문에, 위험한 남성성은 거세되는 경우가 꽤 있다. (Yiff 중에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한 것만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뭐라 코멘트는 못하겠다.) (이것은 5에서 언급하게될 수인의 안전성과 관련되는 문제다.)
 
위의 특질들은 게이 아트에서 주로 다뤄지는 것이기도 하다. 수인은 남성성을 자연스럽게 적용시키기에 적합한 존재이며, 게이들이 이에 끌리는 것은 운명이다....... (난 아님)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 의문점이 생긴다. 파충류 수인도 있지 않나? 특히 드래고니안 같은 것들. 그것들은 위의 것으론 설명할 수 없지 않나? 그렇다. 그것은 털이 없는 수인이다. 대신 그들은 다른 장점을 지닌다.
 
4. 수인과 환상성
 
파충류 수인이라고 하지만 특히 드래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가정하고 시작하겠다.
드래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환상 그 자체다. 판타지 장르와 드래곤은 떼기 힘든 관계다. 신화에서부터 톨킨까지, 톨킨에서 현대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줄곧 드래곤은 환상 세계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러므로 드래곤 수인은 이중의 안전망을 가진다. 동물의 얼굴에 더해서 드래곤이라는 환상이 더해진다. 긴 수명, 강한 힘, 신비한 능력까지 더해지므로 캐릭터적 매력도 증가되기도 하고. 환상의 존재라는 사실은 그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유를 준다(마음대로 설정해도 되고, 막 대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사실 수인은 한 가지 안전망이 더 있다. 그것은, furry건 케모너건 수인러건, 어느 정도 아니메-망가 그림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제에 가깝게 그리는 경우는 잘 없고, 있어도 소수다. 대부분은 큰 눈을 지닌 귀여운 얼굴의, 데포르메가 일어난 형태다. 이 역시 현실에서 수인 세계를 한 발짝 더 떼어놓는 역할을 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여기에 수인 자캐가 들어간다. 95%의 수인러들이 수인 자캐를 만든다고 한다. 고정된 한 개의 자캐만 만드는 경우가 절반에 가까우며, 상대적으로 여러 개의 ‘fursona’를 만드는 경우는 매우 적다. (영문 위키에서... 한국은 어떤지 모름)
자캐는 나지만 내가 아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체현하지만 특성은 공유하지 않는다. 잘나게 그릴 수도, 못나게 그릴 수도 있다. 아파도 자캐가 아프지 내가 아픈 건 아니다. 그러나 자캐가 수인 세계에 존재함으로써 나는 수인 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자캐는 현실에서 두세 겹이나 떨어진 수인의 세계를 쉽고 안전하게 이어준다.
 
이중 삼중 사중의 안전망을 가진 수인러는 이렇게 형성된다고 본다.
 
5. 정리
 
수인은 그러니까, 특히 (남성인) 남성애자의, 안전한 문화가 된다. 이것은 동물에서 기원하는 신화적 존재의 격세 유전격 자손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아니메 오타쿠와 생태학적 위치를 같이하는 수렴진화, 상사기관의 관계……로 보인다. 수인러와 오타쿠의 관계는 사실 분리하기 힘들다. ‘퍼리 팬덤의 21%는 브로니, 44%는 아니메 팬이고 11%만 스포츠 팬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75%의 퍼리 팬덤이 25살 이하, 88%의 퍼리 팬덤이 30살 이하라고 조사됐다.(영문 위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거 같다.
 
수인러가 가지는 특수성도 꽤 짙다. 80%가 퀴어고, 80%가 남자이며, 50% 이상이 실제로 수인 또는 동물이 될 수 있다면 되고 싶다고 응답하며, 코스튬을 입고 실제로 수인 롤플레잉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다. , 다른 오타쿠-팬덤에서도 비슷한 비율일 것 같기는 하지만, 퍼리는 특히 섹슈얼과 가깝기에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칭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합의가 없다. 독자적인 퀴어로 정의하려는 사람들도 있고(퀴퍼에 참가하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수인러가 독자적 성 정체성이라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존재는 정말 실재할 수 없는 것들이고, 그것이 실재하는 대상과의 관계인 기존 섹슈얼리티 체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없을까? 상상 속에서, 매체 속에서만 가능하다면 무성애 카테고리 안으로 봐야 할 거 같은데(나는 나르시시즘도 무성애라 생각한다)(이는 정체성 소고에서 성직자를 예시로 든 것과 비슷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매우 문화에 종속적으로 생성된 섹슈얼 아이덴티티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다.
 
그러나 수인러가 아닌 관계로 여기서 마친다. (번역해서 퍼리들한테 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