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1일 목요일

윤김지영의 <난민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 대해

<난민 문제에 대하여>
외국에서 10년간 이방인으로 살아온 경험을 한 이로서 난민 문제는 그야말로 많은 화두를 던지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을 둘러싼 논쟁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안은 크게 네 가지 여성주의적 문제의식과 담론 개입의 지점을 안긴다.
설마 이렇게까지 생각할까 싶지만, 유학생 경험으로 난민 경험을 이해해 보려 한다는 듯한 이 서두는 매우 당혹스럽다. '추방된 사람들', 디아스포라의 경험과 이민의 경험조차 '타의에 의해  추방되어 돌아갈 곳이 없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할 수 있는 마당에, 이러한 일종의 '나도 알아'식 말 얹기 당사자성 확보는 본인이 비판하던 지점이 아닌가?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것이 본인에게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감히 판단할 계제는 아니나 그것이 같은 이방인이라는 식으로 난민에 가져다 대는 것은 엄청난 자기과잉이다. 물론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할 것은 알겠다. 나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평소에 여성의 말과 경험은 대체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하던 분이 아닌가? 난민 문제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말과 함께 난민 문제를 젠더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난민과 '난민-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1) 경향신문에 따르면 제주도에 난민 신청을 한 예멘 난민의 91퍼센트(총 549명 중 504명)가 남성이며, 이 중 대부분이 20,30대 남성(449명)이며 나머지 9퍼센트(45명)가 성인 여성과 미성년 여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보고가 있다. 현재 예멘은 인간에 의한 재난상황에 직면해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 탈출이 이어졌다면, 왜 그 대다수가 남성들이며 20, 30대인가?라는 질문은 제기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편향적 성비가 두드러지는 예멘 난민 사태는 신체적, 물리적 우위를 가진 남성들에게 보다 유리한 환경임이 드러난다. 가장 소수자인 여성이나 어린이, 노인들은 각종 성폭력과 상해, 살해 위험에 의해 탈출의 반경이 좁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도출될 때에, 난민의 얼굴마저 가장 생존에 유리한 남성이 대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은 유효한 것이다.
즉 현재 난민의 불균형한 성비를 통해서 난민사태에서도 젠더라는 변수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여성억압과 여성차별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것은 여성주의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난민으로 온 사람들에게 '남자 혼자만 왔다'는 지점을 비판하고 있다. 난민 남성이 난민 여성에 대한 가해자로 프레이밍되고 있는 기이한 지점이다(난민 여성을 난민 남성이 착취할 것이란 가정은 검증할 수 없으나 난민 남성들이 난민 여성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인가?).심지어 "가장 생존에 유리한 남성"이라며 20, 30대 남성-신체적 물리적 우위를 근거로-을 지목한다면 "신체의 차이"로 문제를 환원시키는 셈이다. 아까 문제가 단순화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화두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어쨌거나 난민 남성을 지목한다는 것은 난민 여성, 어린이, 노인을 더 많이 구출하겠다는 뜻이어야겠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가지 않는다.

2) 현재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쪽은 난민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를 통해, 난민에 대한 또 다른 단순화 작업을 실행하고 있다. 그저 약하고 상처받고 여리기만 하는 존재로 난민을 낭만화하는 태도야말로 난민들 간에 존재하는 폭력의 위계를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난민 간의 위계에 먼저 집중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현재 논의에서는 난민과 제주민 간에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난민 간의 폭력상황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10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동유럽에서 온 집시 난민들이 파리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목격하였다. 난민들은 성별과 나이 등에 따라 폭력의 노출도와 행위 반경이 위계적으로 부과되어있으며 주로 그룹 단위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10대 초반의 여아들은 임신을 한 상태로 구걸을 하거나 소매치기를 4-5명 단위로 무리지어 하며 그러한 그들을 조정하고 구타, 강간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집시 남성들이었다. 난민들 간에는 성별과 나이에 따른 서열이 명백히 존재하며 이에 따른 성착취와 아동 착취 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착취의 현장성은 착하고도 약한 이들의 화목하고도 하나 된 난민에 대한 환상마저 지배자 계급의 통치 전술의 일환임을 드러낼 뿐이다.
난민 캠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난민 여성들에 대한 각종 성폭력과 상해, 살인, 협박, 갈취 등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는가부터 고심하는 것이 제주도 예멘 난민 정책에 대한 실질적 대책인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 수용된 45명 난민 여성들에게 보다 안전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는지, 45명 중 18명이 미성년인 여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어떻게 제대로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나와야하는 것이지, 모든 난민은 착하고 여리고 약한 존재라는 낭만화야말로 난민 간의 성별 위계적 현실을 묵인, 방관하는 나이브한 태도일 뿐이다.
37억의 남성-여성도 일반화하시는 분이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집단들을 균질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지 않으나, 이 상상된 예멘 난민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 쓰인 글의 수사는 놀랍다. '약한 이들의 화목하고도 하나된 난민에 대한 환상'이 '지배자 계급의 통치 전술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려 난민 남성을 거대한 남성 체제의 일부로서, 지배자 계급으로 환원 중이시다.
예멘 난민에 대한 수용의 문제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며, 유대인이 재산을 노략하고 사회를 좀먹듯이)그들이 여자들을 강간하며, 살인을 하고 범죄를 일으킨다'는 흑색선전이 난민 전체에 대한 거부 반응을 낳고 있는 상황에 "난민 남성의 가해자성을 보라"는 말이 난민 여성들의 수용에 도움을 준단 말인가? '모든' 난민이 착하고 여리고 약한 존재가 아니라며 '난민 남성'을 지목할 때 '난민 여성'은 그럼 그 '낭만화'의 혐의에서 벗어나는가?두 가지 매우 비인간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첫 번째로 '난민 수용' 자체에 대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이들을 어디로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그들은 신체적-물리적으로 우월하기에 더 많은 추방과 고통을 당해도 된다는 말인가? 두 번째는 아래와 연계된다.

3)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결론이 “모든 난민 수용을 금지해야한다”로 비약하는 것은 난민 혐오적 요소를 지닌다. 현재 래디컬 페미니스트 측에서도 난민 수용정책에서 여성과 어린이 우선주의 원칙을 정부 차원에서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난민 수용 전면금지라는 입장과 차이를 띠는 것이다. 
난민들의 탈출 단계에서부터 국제적 공조가 이루어짐으로써 여성과 아이, 노인이라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보다 더 안전하게 난민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정치의 개입 필요성이 더 가열차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탈출 상황을 각개전투로 방치할 때에 현재와 같이 20, 30대 남성들이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가 되는 성별 불평등한 상황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미 탈출해 온 사람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룹이니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끝까지 회피하고 계신다.)"고 말하면서, 누구를 살릴지 '선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지' 따지고 있는 것은 아렌트가 비판했던 유대인 장로들의 '공조 행위'와 어떻게 다른가? 그들과 민족성조차 공유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당신이 그것을 행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당신은 젠더에 있어 난민 남성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위협을 골라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난민 여성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럼 난민 여성이 그 일을 하게 하라. 그럼 그 사람들이 너무 멍청해서 난민 남자들을 다 수용하려고 할 것이다(그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이런 대신해서 선별하겠다는 주장은, 단지 같은 나라 사람이고 같은 전쟁에서 도망쳤고 같은 상황을 공유할 뿐이라는 이유로 그런 경솔한 판단을 할 사람들에게 의사를 물을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사람의 것이다.

4) 제주도 수용 난민 91퍼센트가 남성으로 구성되어있는 현실에서, 예멘 남성 난민은 제주도민 여성들에게 약자로서만 인식될 수 있는 그룹인가?의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다. 독일의 쾰른 집단 성폭력 사건은 난민 남성의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가 내국인 여성이 갖는 사회적 지위를 압도하는 성별 계급성으로서의 강자성을 가짐을 보여준 사례이다. 이러한 사태는 성별 계급성이 여타의 다른 권력위계-나이나 피부색, 국적마저 뛰어넘는 근본적 억압의 기저임을 보여줌으로써 난민 남성이 내국인 남성들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는 약자일 수 있지만 내국인 여성들에게는 젠더 위계와 신체적 우위로 인한 강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멘 난민 남성이 성폭력 집단이라는 단정과는 구분되어야한다. 다만, 예멘 난민 남성이 내국인 남성 집단의 기준에서 약자화되어 있으며 이를 난민에 대한 유일한 인식법으로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남성중심적 인도주의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갖는 난민 남성에 대한 공포를 낮추는 방법은 여성의 남성공포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아니라, 실질적 난민 정책 마련에 있다. 
예멘 난민 남성이 성폭력 집단이라는 단정과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예멘 난민 남성은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지하라"는 것은 뭔가? "그들이 성폭력 집단은 아닐 수도 있지만, 성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말의 화용을 공식적으로는 부정하려는 매우 외교적인(비열한) 수사에 불과하다. 여성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여자가 꽃뱀이라는 단정과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여자가 거짓말로 강간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꽃뱀'이라는 스키마를 깔아주는 행위라고 동의할 테지만 위의 말은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예멘 남민에 대한 취업 박람회가 개최되었다는 뉴스는 나오지만 이들에 대한 재사회화를 위한 여러 교육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언급되고 있지 않음에 대한 비판적 개입은 유효한 것이다. 예맨 남성에게 한국어를 비롯한 난민으로서의 인권을 보호받고 요구할 권리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예맨 문화의 차이에 대한 교육, 여성인권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 여성혐오적 통념의 개선을 위한 교육이수프로그램 등의 의무화 방안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을 때에, 한국 여성이 예멘 남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공포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공포를 낮추기 위해서는 교육 정책의 개입이 난민 정책의 일환으로 공표, 실행되어야하며 내국인 여성에 대한 안전 정책의 실질적 실행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난민 남성에게 갖는 두려움은 약하고 착하고 핍박받는 난민에 대한 이상화 작업과 전면적으로 대비되는 것이기에 난민에 대한 낭만화 작업의 유효성을 담지하기 위해, 여성이 갖는 남성공포를 비웃음과 혐오의 실체로 극대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난민에 대한 낭만화 작업 역시 난민의 현실에 대한 무지이자 또 다른 난민 혐오의 이면임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난민에 대한 낭만화 전술이야말로 난민 간의 폭력 현장에서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난민과 토착민 간의 폭력 상황에 대한 개입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화 속에 존재하는 '여성혐오'를 고치라는 보편적 정언명령을 지금 발화한다면 당신은 그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물은 축축하다"). 노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런 정보값이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멘 '남성'을 지목하여 '한국어, 한국 문화, 여성인권, 여성혐오 통념 개선'을 말할 때 남는 것은 "예멘 여성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는 발화되지 않은 말이다. '난민에 대한 낭만화'를 멈춰야 한다는 당신의 주장은 자기모순적이며, 정확히 말해서는 "예멘 난민 중 남성에 대해서는 악마화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낭만화하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서두에서 "난민 문제를 단순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들어온 이 글은 "여성이 갖는 남성공포를 비웃음과 혐오의 실체로 극대화하는 경향"(비웃음과 혐오의 실체로 극대화한다는 게 대체 뭔가?)이 있다며 "젠더 문제로 단순화"하고 있다."난민을 낭만화하는" 모종의 음모론적 주체를 상정하고 있는 이 글은 "난민을 계몽 안 된 범죄자화하는" 당신의 의도를 고의적으로 호도하고 있으며,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미 머릿속에서 "난민 간의 폭력"과 "난민과 토착민 간의 폭력"이 전제되었고, 전제의 범위 내에서 전제를 반복하며 이 "폭력 인자들"을 낙인찍고 비수용할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즉 난민 사태는 난민 전면 수용과 난민 전면 수용 금지의 이분화된 입장의 대립각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난민 사태에서 비롯된 여러 사회적 사안들을 어떻게 여성주의적으로 해석, 분석, 접근 가능할 것인가부터 난민 정책 속 여성 난민 보호 정책과 여성과 아동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 남성 난민의 재사회화, 교육 정책에 대한 쟁점을 본격화하기 위한 치열한 질문과 논의의 계기여야 할 것이다.
난민 수용을 치열한 질문과 논의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은 당신의 자기계발 서사다.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한 결과가 "난민 남성은 단언하긴 어렵지만 신체적-물리적인 면에서 우월하여 범죄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난민-내국인 여성보다 권력우위에 있다"라는 말로 제노포비아를 매우 정당한 것으로 도장찍어주는 일이라면, 그저 다른 길을 통해서 똑같은 배제논리에 도달하는 일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주의적'이라는 당신의 선언이 선점적으로 선함을 확보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할 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